매년 창립기념일이 있는 5월마다 행사를 했었습니다. 난지캠핑장에서 고기를 구우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을지로에 공간을 대여해서 고기를 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통영으로 워케이션을 가게 되었습니다. 두둥!
예약했던 출발시간 맞게 도착한 우등버스에 차례대로 오를 때는 마치 수학여행 가는 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들뜬 발걸음에 몇몇이 늦게 도착하여 출발이 늦어졌다거나, 법인 카드를 두고 왔다거나 하는 실수들은 사소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일정의 시작, 두개의 강연
짐을 풀고 가볍게 환복한 후 워케이션 기간 동안 업무 공간으로 활용할 통영 리스타트플랫폼으로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다 통영에서 자리 잡고 다양한 지역기반 활동들을 전개하는 네임드 일러스트레이터 밥장님의 강연과, 밥장님과 마찬가지로 통영에 자리 잡고 고객들에게 프라이빗한 투어를 기획, 제공하는 사월의 모비딕 기림대장님의 강연으로 4박 5일의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통영이라는 장소, 워케이션이라는 업무의 형태 등 낯선 것들로 둘러싸여 살짝 벙벙한 상태였지만
삶의 궤적에서 변화를 주고, 자신이 선택한 그 변화에 후회가 되지 않도록 결과를 일궈낸 두 분의 공통된 이야기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의 강연을 통해 받은 신선한 자극들은 통영에서 워케이션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요트, 그 부내나는 삶에 대하여
요트가 한 대에 얼마라더라, 요트를 정박 하는 데만 1년에 얼마를 내야 한다더라 하는 검증하긴 어렵지만 충분히 자본주의적인 대화를 나누며, 영화에서 보던 요트들로 빼곡한 선착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미 머릿속에는 석양 아래 여유롭게 기대어 샴페인을 나누며 우아하게 세계경제 상황과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가득했습니다. 후후
제 머릿속 상상과 무관하게 요트는 통영 바다의 수많은 섬들 사이로 경쾌하게 출발하였습니다. 편안한 좌식의자에 기대어 느끼는 바닷바람은 살짝 찬 기운이 돌았지만, 요트에서 나눠준 담요를 두르면 적당한 선선함에 기분좋은 상태로 선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통영의 바다는 동해에서 만나게 되는 바다의 풍경처럼 탁 트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섬들로 겹겹이 층을 이뤄 일몰의 따스한 햇살 아래 한 폭의 수묵화같은 멋진 장면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질 즘, 선착장에 들어가기 전 해안에서 마지막을 장식한 불꽃놀이는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잘 갖춰진 생활에 조식 한 스푼, 스텐포드 호텔
‘통영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잡았다’는 대표님의 합당한 생색처럼, 바다로 가득 찬 시원한 테라스에서 맞는 아침은 왠지 서울에서의 힘겨운 기상과는 달랐습니다. 내가 오늘과 같은 다음날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집안일에서 자유로워진 부분과 더불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남이 챙겨준 호텔 조식을 먹는다는 것 또한 충만한 삶에 몇 걸음 다가간 느낌이었습니다. (매일 밤마다 술은 마셨지만요!)
4일 연속 술 마시고도 조식 꼬박꼬박 챙겨드신 몇몇 분을 바라보며 알코올로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강철같은 의지와 타고난 DNA가 가지는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수영장과 사우나는 시간이 맞지 않아 이용해 보지 못했지만, 아침식사 후 지하 1층 출구를 통해 연결된 삼칭이해안길 이라는 해안산책로를 걷는 일은 무척이나 특별했습니다.
여기서도 일은 계속됩니다. 통영리스타트플랫폼
워케이션에서 중요한 사무공간은 통영리스타트플랫폼으로 정했습니다.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의 중 하나로, 조선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인 통영리스타트플랫폼은 창업자와 실직자들을 위한 공공 창업 지원 공간인데요, 실제로 몇몇 창업기업들이 입점해 있기도 하고, 공유오피스 공간인 해피랑도 있기에 업무를 보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만큼 소극장과 갤러리, 카페 등도 마련되어있는데, 저희가 갔을때는 전시나 공연 같은 일정이 없어서 아쉬웠네요!
선셋투어와 욕지도 여행
남해가 좋은 점은 해돋이와 해넘이 모두 바다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번 일정에 있었던 선셋 투어에 가장 좋은 점은 사월의 모비딕 기림대장이 선정한 해넘이 명소를 둘러본다는 점이었는데요. 기림대장님이 선정한 장소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부분은 통영 토박이가 아닌, 성인 된 후 통영으로 오신 분이 선정하셨다는 데 있었습니다. 통영에서 쭉 자라신 분들은 너무 당연해서 특별하다 생각하지 못하지만, 외부인 보기엔 너무 특별한, 그런 장소들을 너무 잘 선정해 주셨습니다. 워케이션 기간 내내 날씨가 항상 맑아서 해넘이 보기 더욱 좋았습니다.
워케이션기간 중간에 있던 부처님 오신 날에는 욕지도 투어와 그 이후에 자유 시간으로 일정을 정했습니다. 욕지도 투어는 워케이션 준비하던 때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된 부모님께서 통영 근처에 지내고 계신 직원A분의 일화가 있었습니다.
직원A : 엄마 나 회사에서 통영 가는데 수요일에 욕지도 안 가고 시간 내서 엄마랑 밥 먹으려구.
부모님 : 밥은 무슨 밥이냐, 욕지도가 관광하기 좋으니 욕지도나 보고 가거라.
욕지도는 국내에서 36번째로 큰 섬으로 작은 고등어를 잡아 키워서 출하하는 방식의 고등어 양식으로 유명한 섬입니다. 최근에는 참치 양식에도 성공했다고 하는데 이번 일정에서는 고등어회만 맛볼 수 있었습니다. 섬 일주를 도와주신 욕지도 출신 기사님의 익살스러운 가이드에 따라 다양한(?) 사진도 찍어보고 해안을 걸으며 펼쳐진 절경에서 감탄, 흔들 다리에서는 아찔함까지 느낄 수 있는 일정이었습니다.
돌아오고서야 알 수 있는 것들
사무실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워케이션에서 좋았던 건 바다 위로 떠오른 해와 함께 숙소에서 일어나 느긋이 산책하듯 출근할 수 있다는 점이었던 거 같습니다.
평소에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 없이 출근하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워케이션이 성립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겠지요.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기 위해 몇 시 몇 분에 출발하는 전철을 몇 다시 몇 번 플랫폼에서 타고, 몇 호선에서 몇 호선으로 갈아타고, 몇 번 출구에서 내려서 몇 분을 걸어 몇 시 전까지 출근해내야 한다는 압박과, 내일 아침식사 거리를 고민할 필요 없는 한 주는 꽤 괜찮았습니다.
이미 대표님(놈)의 플랫폼 기능 개선을 재촉하는 잔소리에 통영 여행은 바쁜 일상 속에 잊히고 있네요. 여유와 휴식은 열심히 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겠지요. 듣기 싫은 잔소리와 함께 투닥투닥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코딩을 하고 러시아워의 지하철에 몸을 싣습니다. 지금 보내는 일상이 우리의 여행을 빛나게 할 테니까요.